'벌어서 남주자' 의 삶을 사신
장응복 후원자를 모든 한동인들이 기억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발전과 국민들의 건강생활 증진
장응복 장로님은 황해도에서 태어나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온 이후 1958년부터 헌신된 의사로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서울시 용산구의 장의원을 개원하여 지속적인 의료 활동으로 32년간 용산구 지역 주민들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셨습니다. 보통 밤 11시에 병원문을 닫으면서도 한밤중에 아픈 사람이 집으로 찾아오면 거절하는 법 없이 밤샘 진료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서는 직접 찾아가 치료해주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치료비도 마다하기도 하셨습니다. 용산 지역 외에도 1962년부터 1964년까지는 강화 선원보건소에서 근무하여 강화지역 주민의 건강을 향상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80대에 이르던 2002년부터 2004년 까지도 용산종합노인복지과 촉탁의로도 활동하며 일평생 환자를 사랑한 의료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우리나라 의료 발전과 함께,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공헌하셨습니다.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문화 향상
1968년부터 현재까지 48년간 경민학원의 이사 및 이사장으로 참여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교육문화 부분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그의 묘비에 ‘미국 3대 대통령’ 이라는 명예보다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라는 창립자 로서의 의미를 새겨 넣은 모습에 감동하며, 구체적인 장학재단 설립의 꿈을 가지며, 교육 문화 향상에 더욱 큰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검소한 생활 습관의 귀감
장학 재단을 만들기 위한 꿈을 위해 절약하지 않으면 모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실제로 장로님의 집에서는 10년 된 물건은 굉장히 새 것에 속하고, 20년 된 건 보통, 30년 이상 되어야 좀 오래 썼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습관처럼 근검절약이 몸 에 배어 있으셨습니다. 갑작스레 38선 넘어와서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게 없었고, 결혼할 때도 역시 무일푼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직접 벽돌 찍고 시멘트 바르며 만든 곳으로 1958년부터 지금까지 장로님과 장로님 가정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아흔이 넘으실 때까지도 이동할 때 버스 타고 다니는 거면 족하다며 평생 사치는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장로님의 아내도 틈틈이 손수 뜨개질을 해서 온 가족 입을 옷과 집안 소품들을 만들어서 사용할 정도로, 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장로님과 장로님 가족의 생활은 모두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한동의 교육을 응원하며 100억 기부약정과 기부 실천
100억 정도 모였을 때 평생의 꿈인 장학재단을 만들고자 관련 법규도 알아보고 있던 중 한동대학을 도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습니다.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 故하용조 목사와 故김영길 총장의 삶을 보면서 ‘정직하고 유능한 인재’를 기르고자 하는 한동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형제도 모르고 모질게 다 밟고 올라가서 어떻게든 자기만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요즘, ‘배워서 남 주자’는 한동대 교육철학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이 시대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정직하고 유능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한동대 비전에 동참하기로 하셨습니다. 특히 한동대의 교육이념에 개교 초기부터 동의하며, 1998년부터 우리 대학에 갈대상자 후원참여로 개인 후원을 시작하셨습니다.
특별히 한동대학교에 방문하셨을 때 학생들이 잘 모르는 본인에게 인사하는 모습에 놀라셨고, ‘공부해서 남주자’ ‘WHY NOT CHANGE THE WORLD?’ 라며 외치는 한동인들의 비전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2015년 9월에는 한동의 비전에 적합한 인재 양성과 한동대학이 가진 비전 실현을 위한 100억의 후원금을 약정하였고, 올해까지 총113억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시면서 ‘벌어서 남주는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한동대학교는 장응복 장로님이 의사로서, 우리나라 의료 발전 및 국민건강 증진에 대한 공헌하신 것과 인재 양성에 대한 공적으로 2016년 ‘한동대학교 제1호 명예박사’를 수여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동대학교는 감사의 마음과 함께 장응복 장로님의 뜻을 모든 한동인들이 기억하길 바라며, 장로님의 호를 따서 캠퍼스 안에 서운(曙雲)광장을 조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훌륭한 신앙의 명문 가문을 이루며 믿음의 본을 보임
장로님과 장로님 가정의 증손자까지 7대는 전부 예수를 믿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독실한 전도부인이었던 그의 친할머니를 비롯해 한국 기독교가 시작되는 초기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해 온 믿음의 명가(名家)였습니다. 전쟁 후 상황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부모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내기 급급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상황과 순간마다 기도의 씨앗은 떨어지지 않음을 체험하셨습니다. 부모님의 기도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장로님께서도 자녀와 후대들에게 믿음을 전수하며, 먼저 바로 믿고 행함이 살아 있는 부끄럽지 않는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사셨습니다. 특히 자녀와 후손들에게 ‘예수님 잘 믿는 삶’ 하나만을 강조하셨습니다. 장로님의 자녀들도 교육계와 의료계에 종사하는 실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장로님의 길을 따라 가며, 신앙의 명문가문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기부 관련 문의 : 한동대학교 대외협력팀 054-260-1063 sarang@handong.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