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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딸을 향해 달려와 주신 하나님
작성자: 양은주   |   작성일: 2018.03.09   |   조회: 1350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올해 고난주간은 제게 더욱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문득 저는 과거, 하나님을 모르던 그 시절에 느꼈던 절망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 그때 내가 이런 절망감에 직면한 적이 있었지..’ 그것은 제가 세상에 나아오지 못하고 어둠가운데에서, 이렇다 할 정체성 없이 심지어 깜깜한 미래 앞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들었던 두려움과 절망감이었습니다. 그러한 절망감 가운데에 ‘구제 불능’의 삶을 살고 있던 저를 정말 빛 가운데로 건져주시고, 또 지금 이 자리 이 곳 한동에서 하나님의 너무도 큰 그 사랑을 모든 사람들 앞에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어머니, 언니 저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 부모님께서 이혼 하셨습니다. 마냥 행복한 가족의 막내로, 신실한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계속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동시에 어머니 밑에서 언니와 함께 자라면서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저는 그 때부터 매일 아침 심한 두통과 구토 증상으로 학교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매 년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해서 꼭 채워야 하는 필수 출석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해 다음 학년으로 근근이 진급했습니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학교에만은 나오라는 선생님의 말씀, 하루만 더 결석하면 학교를 일 년 더 다녀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겨우겨우 학교에 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4년, 아니 어떻게 보면 제게는 제 인생 전체를 바친 것과 같은, 암울하고 가망 없는 시간을 어둠가운데에서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매일아침 두통으로 학교에 나가지 못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항상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하러 가시고 언니는 학교에 가면 혼자 집에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점점 더 집에만 갇혀있었고 집에서 컴퓨터와 TV로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를 두통과 구토로 정신없이 시작해서 잠을 자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는 것, 그것이 제 일과였습니다. 평범한 친구들처럼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교제할 수도 없었고 공부를 위해 책을 손에 잡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몇 번 받았지만 특별한 병의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고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의한 만성 편두통으로만 병명을 진단 받았습니다.

 

이렇다 할 병명도 없는 병으로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는 채, 저는 매일매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삶을 구원할 수 없어보였고, 모든 사람들이 저를 보며 ‘가망 없는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제 자아는 더욱 안으로 움츠러들었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 아닌, 저만의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가다가 커서 살아갈 수는 있을까? 나 이러다가 세상에 빛 한번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과연 나한테도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까? 내 삶은 정말로 구제불능인가? 나 이렇게 살다가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을까?’하는 극한 절망을 느꼈습니다. 제가 있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았지만, 제 스스로 다루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이 제 삶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그 누구도 내 삶을 이곳에서는 건질 수 없을 것 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상처로 똘똘 뭉쳐진 인생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러한 극한 절망을 느껴도 제게는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미로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도 알겠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한데 출구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흙탕물 속에서 더 이상 가라앉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어쩌면 제게는 최선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동시에 떠 앉은 집의 빚은 끊임없이 빚쟁이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들였고 그러한 빚 독촉과 딸의 장기 병결, 그리고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해 오시던 어머니의 건강 악화는 우리 가족으로 하여금 대상도 모르는 백기를 들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께서 죽으실 각오로 두 딸을 교회에 데려다 놓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 전에 교회가 믿을만한 곳인지 확인하기 위해 어머니께서는 저희 두 딸을 데리고 처음 교회에 나가셨습니다. 그 날 어머니의 그 결정, 하나님의 장기간의 초청에 응하셨던 어머니의 용기로 저희 가족은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상황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빚에 시달리고 어려움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 제게 달라진 것은 ‘아빠’라는 존재였습니다. 제게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저녁 9시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눈물로 하루하루를 하나님께 매달렸고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을 치유해 나가셨습니다.

 

요 15:20, 22~23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중학교 3학년, 처음으로 두렵고 또 설레는 마음으로 간 겨울 산 기도에서 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분명 추운 겨울밤인데 마음 속 깊이 따뜻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간 하나님의 딸에게 아버지께서는 친히 찾아와 주셨고, 저는 그 곳에서 말로만 듣던 ‘아빠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까지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며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는지, 나를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나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저는 어떠한 면에서 모세와 같았습니다. 모세는 원래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둘러보고 사람을 죽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었고 보이지 않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았습니다. 이처럼 부족하고 서툰 제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제 삶의 영역에서 인지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딸의 바닥까지 낮아졌던 자존감을 세우시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채워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멀리서 보시고 달려오신 하나님, 그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신 하나님께서 제 삶의 아픈 과거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얼룩진 과거들을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셨습니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이사야 52:11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저의 삶을 입히시고 먹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저희 가정의 의식주 문제를 개입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분명히 가진 것 하나 없는 저희에게 정말 최고의 것으로 먹이셨고 최고의 것으로 입히셨으며 집 없이 거리로 내쫓겨야 했을 상황에서 들어 올리셔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다 주셨습니다. 심지어 평생 바랐지만 불가능하다고 단념했던 치아교정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장학재단을 통해 무료치아교정을 받게 하셨습니다. 매 순간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정말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안에서 ‘구별 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위의 이사야 말씀에서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은 레위지파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사람들이 제사장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되고 죄악에서부터 구별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어둠가운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사야 52장 11절 말씀을 주셨고, 하나님 안에서 구별 된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학생의 학업’에 충실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도록 저를 회복시키셨고 그 회복의 날 이후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개근으로 건강하게 졸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구별된 삶을 살기로 결단은 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통째로 결석하고 공부는 손에 잡아보지도 못한 저의 공부는 시작부터 덜그럭거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결단한 하나님의 딸에게 아버지께서는 지혜를 부어주시고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의 열매들을 주셨습니다. 그 사이에도 어머니께서는 극심한 어지럼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하셨고 가정경제는 법원에 파산선고를 받았습니다.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함께 하셨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 119:9

 

대학 선택을 앞두고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께서 내 삶에 원하시는 진정한 뜻을 찾기 위해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성경을 펼쳐서 읽게 되었을 때 시편 119편은 제게 마음의 확신을 주었습니다. 2살 위의 언니가 저보다 앞서 한동대에 간 후, 언니를 통해서 보았던 한동대, 그리고 그 곳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인재상의 한 청년이 시편 119편에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 주의 도를 행하는 자,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우며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적어도 제가 곁에서 본 한동인이었던 언니는 이러한 삶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고 언니가 말하는 한동은 그랬습니다. ‘은주야, 아무도 기도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은 때에 기도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한동이야.’

 

선택의 갈림길에서 롯은 ‘눈에 보기 좋은’곳을 선택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배운 하나님의 마음대로 조카에게 먼저 양보하였을 때 언약을 받고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본 것처럼 저도 세상에서 보기 좋은 곳 보다는 주의 말씀을 따르며 행실을 깨끗케 하기를 배울 수 있는 한동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기준을 배워야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제가 결정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제 눈을 여시고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삼성 장학재단에서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선정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결핍과 궁핍가운데 있지만, 그것을 잊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 되심이요. 모든 것 위에 창조하시고 만드신 하나님을 제 아버지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를 그 진흙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씻기시고 새 옷을 입히신 하나님, 돌아온 탕자를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며 친히 달려와 주셔서 안아주시고 잔치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한 삶이라고 포기했을 때조차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오늘 이곳까지 저의 부족한 내면을 사랑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건강한 자아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를 사랑하여 주셔서 ‘아빠’라고 부르기만 하면 기뻐하시고 또 중심 깊은 곳 까지 만져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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