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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믿기, 살아내기
작성자: 장명성   |   작성일: 2018.03.09   |   조회: 919

-누구보다도 평범했던

 

사방이 산인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저는, 면에 하나밖에 없던 초등학교를 다니는 지극히도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느낀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수재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붙임성이 좋다는 말 하나 듣기도 힘들었습니다. 그저 목사님의 아들이라, 교회에 나가면 ‘목사님 아들이구나’라는 말들 외에는, 칭찬도, 비판도 듣지 않으며 자란 저였습니다. 그렇게 무난한 초등학교 생활 뒤에, 또 면에 하나밖에 없던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7년 동안 같은 친구들과 수업했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때는 그렇게 의미없이 흘려 지나보냈습니다. 2학년이 되던 해에, 어머니도 제가 그저 그렇게, 재미없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을 아셨는지 ‘민들레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입학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게는 재밌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었습니다.

 

 

-틀린 길이 아닌, 다른 길.

 

워낙 재미없게 초·중학교를 다녀서였는지 제게 대안학교는 이렇다 할 개념 없이 좋았습니다. 책상에 앉은 수업보다는 일어서 밖에 나가는 수업이 많았고, 선생님들이 하시는 수업보다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수업이 많았고, 내 생각들을 정리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나는 존중 받는다고 느꼈고, 이때서야 비로소 나의 재능들을 찾아 나갔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생활을, 고등학생 때도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도 대안학교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차 저차하다가 기독교 대안학교계에서는 유명한 ‘세인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도 검정고시를 겨우 합격할 만한 공부만 했던 제게 주어진 국어, 영어, 수학문제는 너무나도 버거웠고, 결국엔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살아오면서, 제가 처음 느낀 ‘실패’였습니다. 그 전에는 시도해보지 않았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실패라는 느낌, 그것이 제게는 커다란 발판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실패 후에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처음 들어본 이름의 기독교 대안고등학교인 ‘공동체비전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실패가 좋은 바탕이 되어서인지 저는 합격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3년을 보낼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의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 져서인지, 전혀 어색할 것 없는 나날을 보낼 때쯤 제게 찾아온 시련은 ‘관계함’이었습니다. 믿음의 훈련을 많이 했던 이 학교에서,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혼탁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하시는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신앙으로 습관처럼 교회를 다녔고 의무감에 붙잡혀 목회자자녀답지 못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이렇게 많은 이들이 확신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때부터 하나님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환경인만큼, 여러 믿음의 훈련들 가운데서 저는 제 자신만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고 ‘기독교 문화 사역’ 이라는 삶을 걸만한 확고한 비전도 얻었습니다.

 

이렇게 뼛속까지 대안교육을 받은 제게 대안학교는 자유 가운데서 그 자유와 일치되어야하는 책임의 문제, 주어진 이름들, 직분들이 없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을 책임져가는 서로간의 연합함을 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시선은 그랬습니다. ‘다른 길이 아니라 틀린 길이야.’ 라거나 ‘사고라도 쳤니?’ 라던 그들의 시선을 바꾸어 놓고 싶었습니다. 대안학교 1.5세대로서, 내가 하게 될 사역을 통하여 많은 이들의 대안학교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 졌으면 하는 바람은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한동으로의 부르심.

 

이렇게 중학교 때부터 대안교육을 받은 저는,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얻은 비전은 대학의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교육과는 상관없다 느끼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한창일 경쟁과, 입시에서 저는 공부라는 이름을 한 시름 놓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고3이 되고서 저는 찬양단장으로 예배를 올려드리던 것도, 회장으로 학교에 힘을 더하려 애썼던 것도 모두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붙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열심이 없던 공부를 붙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었고, 심지어 대학에 갈 것이 아니라면 고등학교도 졸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언젠가, 한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답을 주셨습니다. ‘내가 붙잡는 것이,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말하는 일인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사역을 하는 것이지, 사역을 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이 제게는 해답이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도 하나님께 시간을 쏟으며, 집중하며 고3 시절을 보냈습니다. 항상 느꼈던 것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주님이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생각에 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 대안학교라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설렘을 불러일으킵니다. 의식과 목적, 그리고 이렇다 할 비전도 없이 살던 제게 삶의 목적을 보여주었고, 삶을 살아낼 소망을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동의 첫 느낌도 그랬습니다. 여느 대학과는 달랐고, 많은 세상 사람들은 몰랐고, 더군다나 많은 사람의 시선이 그렇듯 남송리 3번지, 그 시골로 가는 것은 틀린 길이라는 무언의 압박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동대학교가 아니면, 여느 학생들과는 다를 나의 마인드를 수용해 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누나가 다니던 학교여서가 아니라, 그저 기독교 학교여서가 아니라, 제가 한동을 선택한 이유는 누구건 간에, 어떻게든 간에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강력한 힘, 사랑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누나가 몇 년을 다녀온 학교였지만 첫 방문은 면접 때였습니다. 한동은 타 대학들보다 넓지도, 시설이 좋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느껴졌고, 처음 봤지만 나를 위해 손잡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옅은 신앙의 저도 감동케 했습니다.

 

1차에선 어떻게든 합격했지만, 기초가 없는 저에게 영어·수학 면접은 힘들기만 했습니다. 면접 때 제가 붙잡고 나아갔던 것은 ‘관계함’ 이었고, ‘삶의 예배’였지 고등학문도, 수능준비도 아니었습니다. 면접 때는 고등학교 학생회장직을 맡으며, 찬양단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삶으로 살아냈던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믿지 못해서 걱정과 염려로 면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 고등학교 생활이 세상의 기준과는 많이 달랐던 터라 세상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에는 익숙하다 못해 무뎌져 있었지만, 한동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해 줄 것이란 생각으로 몇 달을 기도로 지냈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던 터라 짧게나마 바라왔던 한동대가 아니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창의적 ‘예수쟁이’로 살아내기

 

믿지 못해 두려웠던 나 자신을 깨닫고서 다시 돌아갔을 때, 결국 하나님은 저를 한동으로 부르셨습니다. 요즘은 하나님 당신께서 나를 이 한동대에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한동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학교에 온지 꼬박 두 달이 되었지만, 내게 주어지는 일들은 수도 없고, 후에는 더 많아 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문화사역’이라는 비전이 나를 사로잡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항상 내 비전인 ‘기독교문화사역’을 붙잡고 나아가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힘들었지만 해답을 얻었던 고3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하나님이 저를 지으신 것은 당신을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며 (사 43:21) 서로를 사랑하게 하기 (요일 4:7) 위함임을 믿습니다. 이 한동에서의 삶은 내 자신만의 예배, 그리고 내 자신만의 사랑을 키워나가, 흘려보내는 삶이 되어야함을 압니다.

 

알기는 쉽지만, 믿기는 어렵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제가 이제야 깨닫고 잡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사역도 아니고, 곁에 있어서 모든 것을 해줄 것만 같은 사람들도 아니며, 많은 이들에게 우상이 되어버린 이 한동도 아닙니다. 오직 내게 힘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하신 그 이름입니다. 제 간증은 나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이때까지 나를 도우신 하나님의 승리하심입니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오직 생명 되시는 주님을 붙들며 나아갈 때가 이때임을 압니다.

 

아직 제 앞길 분간도 못하는 것같아 보이는 새내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삶을 걸 수 있는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의 이유 되신 주님을 위해서, 소리로 주님을 이름을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들을 바꾸었듯이, 그리스도의 문화가 세상 문화를 바꾸게 할 것입니다. 제 목표는 이 어지러운 문화시대에, 기독인들을 교회만 나가는 ‘성도’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 품어져 살아가는 창의적 ‘그리스도인’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매일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기초를 놓은 곳, 이 한동 안에서 그리스도의 거울 되어 그리스도를 그대로 비추는 내가 되기를 노래하며,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제 평생의 소원은 ‘예수쟁이’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풍자할 때 주로 쓰는 말이지만, 예수 믿는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말입니다. 그 이름이 가지는 정체성은 예수만 가득한, 그런 사람을 뜻하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한동의 많은 이들이 예수의 마음 품은 ‘예수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에 비추어질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고, 믿고, 살아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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